“이번엔 어깨랑 목을 같이 움직여볼게요! 잘 안돼도 괜찮아요. 주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자기 느낌대로 그냥 즐겨봅시다!”
4월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댄스 스튜디오에서 ‘굳이 프로젝트’ 팀원들이 팝핑 댄스를 배우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댄스 스튜디오, 일일 팝핑 댄스 강사로 나선 대학원생 송원석(27)씨가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10여명의 청년이 아이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들이 한데 모인 이유는 송씨가 보낸 한 통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번 주 화요일, ‘굳이’ 팝핑 배워보실 분 있나요?”
부지런한 삶을 의미하는 ‘갓생’(God(신)와 인생을 합친 신조어) 트렌드가 2030청년들 사이를 휩쓸고 간 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는 소소한 일에 ‘굳이’ 도전하는 활동이 조용히 유행 중이다. ‘굳이 데이(day)’, ‘굳이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의 작은 도전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때로는 숨통을 트워주고, 단조로운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며, 더 큰 도전을 위한 추진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4월 10일 열린 ‘굳이 프로젝트’의 ‘굳이 백일장 대회’. 2030 청년들로 구성된 참여자들은 “이날이 아니면 더이상 백일장에 참여해볼 일이 없을 것 같아 나왔다”며 당시 소감을 말했다.
춤을 좋아하던 대학원생 송씨를 팝핑 일일 강사로 만든 곳도 ‘굳이 프로젝트’다. 일종의 동아리처럼 운영되는 이 프로젝트는 일주일에 1번 ‘굳이 싶은 도전’을 하고 온라인에 인증하는 게 규칙이다. ‘굳이 아무 버스 타고 아무 정류장에서 내려보기’, ‘굳이 버리려고 한 바지 수선해보기’, ‘굳이 이유 없이 엄마 안아드리기’ 등 무엇이든 도전이 될 수 있다. ‘굳이 팝핑 배우기’처럼 함께 하는 오프라인 활동도 있다. 지난 10일에는 올림픽공원에 모여 ‘굳이 백일장’을 열었고, 다음으로는 ‘굳이 함께 유기견 봉사 가기’ 등이 예정돼 있다.
굳이 프로젝트를 만든 건 평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으며 살아온 청년 2명이다. 유동현(30)씨는 “대학 2학년 때 꿈을 찾고 싶어 자퇴를 했고 직장에 다니며 굳이 단편영화를 만드는 등 굳이스러운 도전을 많이 해왔다. 남들의 걱정과 달리 결론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도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엔 누군가의 ‘굳이스러운 도전’을 응원해 보고 싶어 만들게 됐다”고 했다. 신정현(28)씨도 “‘굳이’라는 표현은 보통 도전을 머뭇거리게 하는 말로 쓰이는데, ‘굳이 이것까지 도전하는’ 이들이 인생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굳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바꿔보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지난해 12월 유씨와 신씨를 포함한 4명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서울, 부산, 도쿄,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106명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들은 일상의 작은 행복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굳이 나의 장례식 상상해보기’ 등의 활동을 한 신주현(28)씨는 “안 해본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던 날들이 많았는데, 굳이 작은 도전을 계속 하다 보면 한 달 전의 나, 1년 전의 나와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어린이재단에 정기 후원해보기’에 도전한 윤바라(29)씨는 “정기 후원은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진입장벽이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핑계 삼아 장벽을 뛰어넘어봤다. 프로젝트가 작은 발판을 마련해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개성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정현씨는 “우리나라는 ‘대학 입학-대기업 취업-결혼’이 성공한 삶의 정답처럼 여겨지는데, 각자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게 오히려 건강한 사회인 것 같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굳이’ 도전하는 일들이 권장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