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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탐험가를 모시게 된 이유
<굳이 프로젝트>는 친구 4명이서 매주 소소히 ‘굳이?’스러운 일들을 공유하던 모임이었습니다. 우리끼리만 하기엔 너무 재밌다는 생각에 올해 3월, 처음으로 공개 모집을 시작했고 3개월 만에 매 기수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커뮤니티가 되었어요. 여전히 작고 귀여운 수준이지만, 100이라는 숫자가 가끔은 헉! 하고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모두 이 커뮤니티에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참여하시고 계신 걸 텐데, 저희가 100개가 넘는 이 모든 기대에 부응하긴 쉽지 않을 테고요.
한 가지 기대에 꼭 부응해야 한다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일텐데 왜 굳이(?) 굳이스러운 짓을 억지로 하려고 이 곳까지 오셨을까. 그 이유는 사람 수 만큼 다양하겠지만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기대가 있다면 ‘이 커뮤니티가 어떻게든 나를 굳이스러운 일을 하게 만들어주겠지’라는 마음이겠죠. 이것만큼은 저희가 더 수고를 해서라도 부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한 짓을 함께 할 사람이 몇명만 모여 있어도 덜 민망합니다. 덜 민망하면 일단 할 수 있게 됩니다. 선장도 부선장이 없었다면, 부선장도 선장이 없었다면 이 굳이스러운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처럼 말이죠.
그럼 왜 굳이 이상한(?) 사람들까지 모아가면서 굳이스러운 일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저는 이 세상이 굳이스러운 사람들의 모양대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굳이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다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면 역사는 그 길을 따라 흐릅니다. 예술도, 과학도, 철학도, 기업도 다 그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굳이스러운 사람을 보면 괜히 심장이 떨리면서 나도 더욱 더 굳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저에게 굳이스러운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동기는 ‘굳이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매 기수 굳이스러운 사람을 한 분씩 섭외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동기가 굳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탐험가분들에게도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기적인 가정을 했습니다. 탐험가들의 탐험가 역할을 해주는 만큼, 그들에게는 대표 탐험가라는 호칭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대표 탐험가는 굳이 프로젝트의 자극제이자, 더 재밌게 굳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제시해주는 큐레이터입니다.
8기 대표 탐험가: 장호기
굳이 프로젝트 역사 상 처음으로 섭외한 대표 탐험가는 <피지컬: 100>을 연출한 장호기 PD입니다.
PD님은 채널A에서 <먹거리 X파일>, MBC에서 <PD수첩>을 제작하는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PD였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넷플릭스에 피지컬에 관한 30여 장의 기획안을 제출합니다. 그리고 2주 만에 넷플릭스로부터 제작 결정 연락을 받습니다. 결국 잘 다니던 MBC를 퇴사하게 되고, 지드래곤의 소속사로도 유명한 갤럭시 코퍼레이션 산하 레이블의 CCO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피지컬: 100>은 한국 예능 사상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 비영어 부문 1위를 달성합니다.
그의 서사 속 많은 선택들은 누군가에겐 ‘굳이?’스러울 만한 점들이 많아 보입니다. 섭외 후 인터뷰를 해보니 그러한 그의 성향은 꽤 오랜 시간 숙성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그가 ‘굳이스러움’에 대해 내린 정의가 너무 좋았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었고, 그 관점으로 이번 주에 굳이 뭘 해볼까 생각하니 훨씬 더 다채로운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이다보니 인트로가 길었습니다. 그는 왜 대표 탐험가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추천한 굳이 활동 4가지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인터뷰에 자세히 담아보았습니다. 길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호기의 추천 굳이 활동 4가지
1.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해외여행지를 추천받고 무작정 떠나기(단, 사진은 촬영하지 않기)
2. 이름만 알고 있던 클래식 피아니스트 1명을 선정하여 인생사와 곡들을 정주행하기
3. 제대로 시도해 본 적 없는 장르의 요리 클래스를 수강하기
4. 자전거 타고 국토 종주하기
장호기의 어린 시절
- 장호기님이 굳이 프로젝트의 첫 대표 탐험가입니다. 요청을 수락해주셔서 놀랐어요.
“굳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과 가치에 대해 굉장히 공감하는 편이에요. 저도 그런 행위를 자주 하는 편이고, 하려는 편이고. 그리고 저는 그게 되게 재밌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각박한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밌는 일들을 많이 시작하면 세상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수락하게 됐죠.
그리고 사실 하고 있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잖아요? 애초에 이 직업을 갖게 된 게 원래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을 하다보니 그런 마음이 더 커진 것도 있는 것 같고요.”
- 그래도.. 이렇게 혼쾌히 수락해주실 줄 몰랐어요. PD는 특히 바쁠텐데요.
“그 정도로 바쁘진 않아요(웃음). 그리고 안 바쁜 사람은 어딨겠어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솔직히 한 달에 한 두 시간 못 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핑계지.”
- PD님의 여러 인터뷰를 읽어봤어요. 완전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학창 시절의 장호기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다 비슷할 그런 학생인 것 같아요. 그저 열심히 공부했죠. 돌아보면 억울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교를 가고 난 후, 특히 군대를 다녀오고 난 후부터 재밌고 신기하고 처음 해보는 것들을 많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돌아보면 어린 시절부터 뭔가 좀 특별한 걸 추구하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괜히 고등학교도 특수 목적 고등학교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고, 군대도 특공대로 가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 진로도 자연스럽게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진로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 초년생 때는 누구나 그렇듯 동아리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친구들이랑 잔뜩 놀면서 시간을 보냈죠. 크게 고민한 결과는 아니지만, 아마 법조인 쪽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 있어서 군대를 다녀오고 나면 고시 공부를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됐어요. 이등병 때 친구가 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책을 읽었는데 두 주인공이 각자가 하는 선택으로 인해 삶이 엄청나게 갈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책 속의 나르치스의 수도원 삶과 비슷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제부턴 골드문트처럼 살아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한테 진짜 재밌을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순간부터 뭐가 나한테 재밌는 직업이 될 수 있는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휴가를 나오면 다양한 선배들을 만나서 물어봤어요. PD하시는 분도 있었고, 연극일 하시는 분도 있었고.. 그러다 우연히 <PD, Who&How>라는 책을 읽었다가 PD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 당시 여러가지 갈래에서 고민을 하다가 최종적으로 광고 기획 쪽 카피라이터와 PD, 이렇게 두가지로 선택지가 좁혀졌어요.
사실 그냥 완전 자유롭게 창작하며 사는 예술가의 삶도 상상해보긴 했지만, 너무 가난하면 꿈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거든요. 한창 연극 좋아할 때 대학로 길거리에 포스터 붙이고 다니면서 진심으로 열심히 했던 때가 있는데, 너무 가난했어요. 그러다보니 과연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겁이 많이 나더라고요. 선배들도 정말 고생하는 게 보이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저 두가지 경로로 좁혀졌던 것 같아요.”
- 두 가지 선택지에서 어떻게 PD로 굳혀지게 된 건가요?
“일단 광고 기획 쪽 일을 하기 위한 공부와 PD를 하기 위한 공부가 어느정도는 결이 비슷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빨리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점점 더 알아가다보니 PD로서 일하는 게 제가 훨씬 더 원하는 식의 창작 활동에 가까워보이더라고요. 아무래도 광고 쪽은 광고주의 요청이 중요한데, (PD도 어느정도 광고주를 상대해야 하지만)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이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런데 PD가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대학 졸업 후 당시 100초짜리 자기소개 영상으로 PD를 선발하는 채널A에 합격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셨는데요. 어떤 100초 소개를 하셨길래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을 수 있었던 건가요?
“100초 영상은 첫 관문 정도였고 이후에 면접까지 다 통과해서 갈 수 있었죠. 보통 언론사들은 상식 시험을 보거든요. 그런데 전 상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상식 시험이 없는 채널A가 보여서 지원했죠.
소개 영상은 정말 잘 만들어야 눈에 띌 것 같았어요. 종편 개국 시점이다보니 지원자들이 폭탄처럼 몰릴 게 뻔했거든요. 그냥 보통 잘 만드는 수준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새로운 걸 기획할 때 제 노하우가 있어요. 저는 일단 가장 중요한 것부터 생각해요. 그 다음 그것부터 제외시켜버려요. 자기소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에요? 자기. 그래서 저는 제가 안 나오는 자기소개 영상을 만들었어요.”
- 와,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안 되는데요.
“아까 말한 저한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책을 사준 친구있죠? 그 친구가 저보다 더 미친 놈인데 아무튼. 그 친구가 사진학과여서 카메라가 있었어요. 그래서 우선 치킨을 하나 먹이고 부탁을 했죠. 그 친구가 제 집을 터는 컨셉으로 해서 도둑의 시선으로 카메라를 잡게 한 거에요.
100초 동안 원씬 원컷으로 연출되게 연습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 제 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이 컴컴한 상태이고 도둑은 후레시를 들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제 방에 딱 저를 소개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들을 배치해놓고 후레시로 하나씩 비추면서 혼잣말 멘트를 치게 시켰어요. 방에 책이 많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이 사람은 뭔데 이렇게 책이 많아’ 이러고, 그 중에 <PD, Who&How> 책을 보면서 ‘이 사람은 PD가 하고 싶은가 봐’, 그리고 벽에 세계 지도를 붙여놓고 여행 다녀온 곳들을 체크 표시해뒀었거든요. 그거 보면서 ‘이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나보군’ 이런 식으로 계속 저를 대신 소개하다가 마지막에 자고 있던 제가 깨어나면서 ‘너 뭐야!’ 하면서 끝나는 영상이었어요.”
- 와, 참신해요.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되게 잘 기획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원래 진짜 아무것도 없으면 살기 위해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나오잖아요? 진짜 절박한 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 지금은 이전만큼 아무것도 없는 상황은 아닐 것 같은데(웃음). 지금은 왜 잘 하시는거죠. 여전히 본인이 절박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절박함은 설정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절박함을 설정하는 사람은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진짜. 그러면 안 돼요.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절박한 척 하는 건 달라요. 그리고 절박하지 않으면서 절박한 척 나를 속이는 건 결국 숨겨지지 않더라고요.
제가 막 개구리가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올챙이 시절에서 이제 뒷다리가 약간 더 난 수준이라고 본다면, 이제는 예전처럼 절박한 상태로 뭔가에 임하는 건 안 되는 것 같아요. 안 돼요, 안 돼.
이제는 이 상황에 맞게 생각을 바꿔야 해요. 예전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진 상황이니 그 상황에 맞게 잘 해야 하는거죠. 지금은 진검 승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방법 밖에 없어요. 예전엔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정도로 충분했다면, 이제는 결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니까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상황에서 기획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더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내 상황이 그렇지 않으니 알려주셔도 써먹지 못하겠다 싶어서 자연스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PD님의 최근 인터뷰들을 보면 글로벌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언급하시더라고요. 언제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신가요?
“1학년 때 배낭 여행 다녀온 때부터 인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여행을 꽤 많이 다녔어요. 시간만 된다면 틈틈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세상이 정말 넓다는 걸 느꼈어요. 이 지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구나. 그리고 결국 다 나랑 똑같은 그냥 사람들이구나.
생각보다 가까이에 너무 좋고 친하고 재밌고 멋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깐 이런 사람들이랑 앞으로도 계속 뭔가를 같이 하는 게 정말 재밌는 일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 것 같아요.
‘한국 다 필요 없고 우리는 꼭 글로벌로 가야 해!’ 라는 말은 아니에요. 오히려 요즘 넷플릭스든 유튜브든 세상과의 연결이 너무 잘 되어 있잖아요. ‘이렇게 다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이걸 이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인 거죠.”
추천 굳이 활동의 스토리&이유
- 이번에 추천해주신 굳이 활동들이 다들 너무 재밌어보였어요.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호기님은 ‘굳이스러움’을 어떻게 정의하시고 활동들을 추천해주신 건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굳이스럽다는 표현도 사실은 존재하는 표현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마 지금도 저희가 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그냥, 굳이 뭔가를 한다는 건 진짜 처음과 만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막 낯선 것과의 만남, 익숙하지 않은 것과의 만남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처음과의 만남이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게 되게 차이가 커요. 원래 즐겨 마시던 차를 살짝 다르게 만들어서 마셔보는 것과 완전히 처음 가보는 나라에서 현지인들이 마시던 컵에 마테차를 따라서 마셔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는 거죠. 둘 다 똑같이 뭔가를 처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어느 선 상에서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처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거기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더라고요. 완전히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그런.
- 제안해주신 활동들이 다 그런 ‘처음’을 만날 수 있는 것들일까요?
“’이것들을 하면 모두 그 순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같은 건 아니지만, 이런 행위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그 처음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은 더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제안하게 된 활동들이에요. 모두 제가 경험해 본 것들이기도 하고요.”
- 그럼 활동들을 하나씩 살펴볼게요. 제일 첫 번째가 누군가 추천해주는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이 경험을 하셨다는거죠?
“네, 남미를 갔었어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확실히 ‘여행 어디 가지?’라고 생각했을 때 머릿 속에서 바로 딱 나오는 나라들은 아니죠. 그래서 골랐어요. 제일 먼 데가 어디지? 하고 있는데 친구 한명이 아르헨티나가 재밌다고 하길래 그 날 바로 비행기 예약해서 바로 다음 날 떠났어요. 한 열흘 좀 넘게 있었던 것 같아요. 채널A 사표 내고, MBC 입사하기 전 그 사이에 갔었네요.”
- 거기서 어떤 ‘처음’을 만나신 건가요?
“페루 아니면 칠레에 있을 때 현지 민박집 같은 데서 잤었어요. 거기서 민박집 주인장 분이랑 저녁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한국인이면 맨날 ‘두유노 두유노’ 그런 거 하잖아요(웃음).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을 진짜 많이 알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에 어떤 다큐나 리얼리티 같은 건 아예 모르는 거에요. 저는 당시에 그런 프로그램을 하던 PD였으니깐 물어봤던 건데, 전혀 모르더라고요. 하긴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그런데 그 때 제가 ‘내가 나중에 당신도 볼 만한 그런 프로그램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걸 넷플릭스에 기획안 낼 때도 얘길 했었어요. ‘칠레에 있는 할머니가 있는데 내가 그 사람도 볼 수 있는 걸 만들어보겠다’라고. 그 때가 정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겠다고 결심을 했었던 첫 순간이었어요.”
- 진짜 중요한 순간이었네요.
“여행하다보면 그런 게 하나씩은 남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여행에서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어요. 일부러 그랬어요. 지금은 약간 후회되기도 해요(웃음). 그 때가 너무 그리운데 사진이 없으니깐.. 어딘지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오히려 훨씬 더 많이 기억이 나고, 훨씬 더 많이 남는 것 같아요. 사진을 안 찍어서.”
- 사진을 안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였나요?
“물론 제가 PD 생활을 하다보니깐 그런 영상이나 사진 기록 행위가 신물이 난 것도 있지만(웃음), 뭔가를 내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에 막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찍어놓고, 또 그걸 찍기 위해 어딘가를 일부러 가고 하는 게 되게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계속 눈으로만 많이 보고 다녀보자라고 생각을 하고 갔더니 진짜 훨씬 재밌더라고요. 현지화가 되더라고요.”
- 눈에 담기는 순간들이 괜히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훨씬 그렇게 돼요. 그리고 음식 사진 같은 것도 그래요. 음식들 잔뜩 채워놓고 사진 찍고 하는게 아니라, 그걸 찍을 시간에 훨씬 더 빨리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니깐 그 음식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어요. 사진 찍으면 다 식어요(웃음).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사진 찍는 시간만 아껴도 몇 시간은 될 걸요? 백날 찍어서 뭐 해요, 어차피 구글에 더 좋은 사진 많아요(웃음).”
- 국토 종주를 제안하신 이유도 궁금해지네요.
“제가 29살에 거의 우울증 수준으로 우울했어요. 30살이 되는 게 너무 우울했어요 그 땐. 맨날 김광석 노래 듣고 새벽에 울고 그랬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아무튼 그래서 30살이 되기 전에 이상한 짓을 한번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뭐가 있을까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한번 자전거로 땅끝까지 가보자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바로 또 출발했어요. 타이어에 바람 어떻게 넣는 지도 모르는 상태로 바로. 옷도 한 두 벌 가져갔나?
인천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3박 4일인데 4박 5일 만에 갔는데,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고 고글을 썼는데 엄청 타가지고 너구리 같은 상태가 한 1년을 갔어요. 사람들한테 병X 같다는 소리를 1년 동안 들었어요. 도대체 뭘 한거냐고.”
- 그 때는 어떤 발견이 있었나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작구나. 그리고 동시에 생각보다 넓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전거로 횡단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 힘들었으니깐, 진짜 멀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요. 그게 되게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국토 종주를 하다보면 이상한 길로도 많이 다니게 되거든요. 원래 가야 하는 길이 공사중이라서 돌아가다가 갑자기 산이 나오기도 하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면서 엄청 헤매고 그래요. 그러다가 생전 가볼 일 없는 그런 길을 가게 돼서 처음 보는 시골에 가게 됐어요. 아직도 기억 나는게 거기서 본 식당 이름이 ‘서울 식당’이었어요. 그런 것도 너무 웃기더라구요.
식당 문이 닫혀있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저희가 너무 진짜 너무 배가 고파서 돈 더 많이 낼 테니깐 어떻게 밥 좀 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자기들이 먹고 있었던 삼겹살을 주셨어요(웃음). 그래서 그거 구워먹고 한 명 당 만 오천원씩 계산하고 갔어요. 그런 게 진짜 재밌었어요.”
- 여행이나 국토 종주는 즉흥성이 느껴지는데 세 번째로 제안하신 요리 배우기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스토리가 있는 건가요?
“아침 생방송 PD를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 땐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 10시에 일과가 끝났어요. 그러다보니 오후에 뭔가를 해야 되겠다 싶어서 국토 종주 같이 했던 친구들이랑 작당모의를 하다가 ‘이번엔 요리?’ 이러고 바로 해보게 된거죠. 이것도 그 날 바로 남대문 시장에 칼부터 사러 갔어요.”
- 당일에 바로 뭔가를 하시는 타입이시네요.
“그게 재밌잖아요(웃음). 남대문 시장 가서 칼 사고, 요리사 모자 사고, 앞치마 사고. 그리고 바로 종로에 있는 요리학원을 등록했어요. 그리고 ‘이왕 할거면 자격증을 따자!’라며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했죠.
배우고 시험 보는 것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결국 자격증을 따진 못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아직까지도 납득이 안 돼요. 내 요리가 떨어졌다는 게. 저 심지어 재수까지 했거든요. 필기는 붙었고 실기를 한 번 떨어져서 한번 더 봤는데 또 떨어졌어요. 제가 얼마나 간절했냐면, 인터넷에 찾아보니깐 이 실기 시험이 어떤 사람들이랑 보느냐가 영향이 꽤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횡성에 가서 시험을 보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고 해서 스타렉스를 빌려가지고 친구랑 횡성으로 가서 시험을 봤어요. 시험 보고 한우 사서 먹고.. 그런데 또 떨어졌어요. 둘 다.
마지막 과제가 오이소박이랑 오징어 볶음이었는데 저 진짜 잘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담당 부서에 왜 떨어졌는지 좀 알려달라고 전화까지 했어요. 그걸 알아야 연습을 또 하니깐. 그런데 못 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자격증 못 딴 게 진짜 한이에요.”
- 요리는 이제 잘 하시나요?
“요리에 관심이 훨씬 생겼죠. 그리고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고. 그리고 요리가 생각보다 재밌는 행위더라고요. 한식 조리사라는게 막 김치찌개, 계란말이 이런 거 만드는게 아니라 궁중 음식을 만들어요. 수정과 같은 거 만들 때 배를 띄우고 배 위에 후추를 세 알 박아야 하고. 이런 게 그 때 아니면 해볼 일 없는 것들이니깐 되게 재밌더라고요.”
- 저는 호기님이 늘 이런 특이한 일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는게 신기한 것 같아요.
“국토 종주랑 요리 클래스 같이 한 친구들은 대학교 때 친구들이에요. 지금도 자주 보는 친구들인데 이제는 서로 가정이 생기다보니깐 이상한 짓까지는 못해요. 그래서 사실 좀 속상하긴 하죠. 그래도 확실히 이런 친구들 있는게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굳이 프로젝트 같은 커뮤니티가 좋은 것 같아요. 혼자 하면 무섭잖아요. 둘이나 셋이 있으면 뭔가를 하기가 훨씬 더 쉬운데. 그리고 진짜 더 참신한 걸 할 수 있어요. 비슷한 사람 둘, 셋이 얘기하다보면 더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하니까요.”
- 마지막으로 제안해주신 활동이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전곡 감상해보기 인데요. 이건 어떤 이유로 선정하신 건가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나 아티스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드라마틱하더라고요. 곡 제목들이 소나타 몇 번 이런 식으로 이름이 없다보니깐 사람들이 잘 기억 못하고 구분을 못하는데, 각 곡들마다 엄청난 스토리들이 담겨있어요. 만약 저한테 기회만 준다면 저는 각 곡 마다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요. 제가 볼 때는 클래식 음악이 인기가 없는 게 제목이 어려워서 같아요. 제목이 명확한 곡들은 인지도들이 꽤 있거든요.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이 아닌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에는 스토리의 원형 같은 것들이 녹아들어있어요. 서사들이 다 있더라고요. 어떤 곡은 아내를 잃고 슬퍼서 쓴 곡인데, 보통은 그런 걸 모르고 듣죠. 그런데 그 곡에 대해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의 차이가 굉장히 커요. 알고 들으면 마치 내가 아내를 잃은 듯한 나만의 슬픔, 나만의 감정이 느껴져요. 감정이 풍부해지는 거죠. 무엇보다 가사가 없으니깐 감정을 강요받지 않을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 자주 감상하시는 편인가요?
“엄청 많이 들어요. 그런데 이런 거 얘기하면 사람들이 되게 재수 없다고 해서 티는 안 내요. 그치만 저는 정말 좋아해요. 말을 안 할 뿐이지. 처음에는 그냥 어떤 곡이 유명하다더라 하니깐 듣게 되다가 어느 순간 이 곡을 만든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그걸 연주하는 사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클래식 음악은 감정의 원형을 담고 있는 곡이라서 연주하는 사람마다 다르게 연주를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이 가진 감정의 결과물은 각자 가르기 때문에 이 원형을 해석하는 방식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듣다 보니 훨씬 더 많이 남게 되더라고요.”
- 감정의 원형이라는 표현이 호기님이 말씀하셨던 ‘처음’이라는 것과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클래식이 그 ‘처음’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걸까요?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 같은게 생기는 것 같아요. ‘슬픈 노래다!’라는 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슬픔도 있고 이러이러이러한 슬픔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슬픔 속에도 기쁨 속에도 다 그래프가 있는데 이런 걸 우리가 잘 모르고 살거든요. 그냥 ‘좋다’, ‘나쁘다’만 있는.
요즘 사람들은 감정을 뭉탱이 지어서 살게끔 강요받아요. 저는 그래서 이모티콘이 싫어요. 그냥 하나로 정해져있는 것 같아요. 계속 노출되다보면 자연스레 그런 거에 익숙해지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너무 건조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거에 대해서 누군가와 대화 나누다보면 하나의 감정에 대해서도 되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그러면 내가 더 입체적인 사람으로 변하는거죠. 그러면 세상이 달라보이게 돼요.“
- 제안해주신 모든 활동들이 다 너무 재밌는 스토리들이 있어요. 인터뷰를 하는 이 순간에도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을 정도에요. 멋진 활동들로 추천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인간 장호기가 굳이스럽게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전에 <피지컬: 100> 시즌1 끝나고 제주도에서 35일을 살았어요. 그게 되게 좋더라고요. 지금 바쁜 게 끝나면 아마 또 굳이 어딘가로, 아마 해외로 가서 40일, 50일씩 살아볼 것 같아요. 이제 어느정도 또 한 사이클을 크게 돈 것 같아요. 다시 한번 포맷을 해줘야 할 타이밍입니다. 아, 얼마 전에 피아노를 샀네요. 굳이 클래식 연주 한번 해봐야겠어요.
끝.
호기님께서는 그저 굳이 뭔가 해보자고 모인 모임에 자기가 제안하는 활동들을 이렇게까지 설명을 하는게 맞나 싶다고 하셨습니다. ‘굳이’라는 것과 모순되는 것 같다면서. 저희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멋진 인터뷰를 공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겠어요? 호기님의 추천 활동은 그저 아이디어가 고갈된 굳이 탐험가들을 위한 가이드일 뿐입니다. 꼭 하실 필요 없고 중요한 건 여러분들이 진짜 하고 싶은 그 굳이스러운 무언가를 하는 것인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드리며.
진짜 끝.